안냐 니에미 《She Could Have Been A Cowboy》

안냐 니에미의 《She Could Have Been A Cowboy》는 카우보이를 동경하는 한 여성의 상상 속 세계를 연출했다. 이 시리즈는 현재 영국 The Little Black Gallery( www.thelittleblackgallery.com)에서 전시중이며, 2018년도에 뉴욕 Steven Kasher Gallery, 암스테르담의 The Ravestijn Gallery, Photo London 등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또한 동명의 사진집도 발행됐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것은 마치 한 가지에 열린 두 개의 사과와 같으니.” - 버지니아 울프, 올란도 中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 Orlando: A Biography>에는 400년 동안 남성과 여성의 몸을 오가며 살아온 인물이 등장한다. 16세기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총애를 받던 미소년 올란도는 여왕에게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말라”는 말을 듣고 이후 400년을 영원한 청춘인 채로 산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의 몸이 어떤 일인지 여성으로 변했음을 발견하고 당황하지만, 이후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남성일 때는 모르던 여성의 삶을 경험하고, 종래에는 결혼하고 자녀도 낳는다. 올란도는 양성(兩性)을 다 경험해봤다는 면에서, 그리스 신화의 테이레시아스를 연상시킨다. 테베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남성과 여성의 삶 양쪽을 다 살아보고, 어느 성(性)의 쾌락이 더 큰 지 묻는 제우스와 헤라의 질문에 여성의 쾌락이 더 크다고 답했다고 한다.

올란도와 테이레시아스처럼 남성과 여성, 이 양쪽을 다 살아본 삶은, 마치 외눈박이 세상에서 두 눈을 가지게 된 사람처럼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가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규범으로 제약받아 보지 못하던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변신(變身)을 꿈꾼다.


 
 

She Could Have Been A Cowboy © Anja Niemi : The Little Black Gallery



The Girl © Anja Niemi : The Little Black Gallery



The Cowboy © Anja Niemi : The Little Black Gallery
 

상상 속 세계를 사진으로   
노르웨이 작가 안냐 니에미Anja Niemi 역시 자신 아닌 또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꿔왔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보고 이야기를 상상해서 캐릭터를 만들기를 즐겼던 그녀는 자신의 상상 속 세계를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모델, 연출, 촬영, 배경 셋팅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진행하는 그녀는, 시리즈 하나에 캐릭터와 스토리를 담아내 한 편의 역할극을 완성시킨다. 똑같은 두 여성이 등장해 결국에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살해하는 나, 마치 히치콕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불길한 암시가 있는 등은 그녀의 이런 상황극 연출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상상 속 인물이, 또 다른 인물을 상상하는 식으로 중복되는 플롯의 시리즈도 작업했는데, 에서는 한 이탈리아 여인이 무희, 광대 등 또 다른 자신을 상상한다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안냐 니에미의 신작 (그녀는 카우보가이 될 수도 있었겠지)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속 주인공 올란도처럼, 양쪽 성을 다 경험해보기를 원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작가의 상상 속 여인은 보수적인 관습 속에서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정숙한 삶을 강요받는 여성의 삶에 지쳤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존 웨인(John Wayne)의 <11인의 카우보이>, <마지막 총잡이> 같은 서부극을 보는 것이다. 그녀는 사실 핑크색 드레스보다는 가죽 재킷과 바지를 입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싶어한다. 그녀의 여행가방에는 카우보이 모자와 장갑, 채찍, 술달린 가죽 재킷 등이 보관돼있고, 벽에는 카우보이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녀는 환상 속에서 핑크색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카우보이 복장으로 갈아입고, 존 웨인이 결투를 벌이던 황야에서 말을 타고 달리기를 꿈꾼다.

안냐 니에미는 자신이 상상한 핑크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다시 카우보이가 된 자신을 상상한다는 액자 소설같은 이중 플롯으로 사진 속 스토리를 끌고 나간다. 마치 아이가 상상 속에서 스스로 해적도 됐다가 용사도 되는 식으로 여러 역할을 하며 1인극을 펼치는 것처럼, 안냐 니에미의 캐릭터도  스스로 주인공과 악역, 양쪽 역할을 다 하며 황야에서 결투를 벌인다. 상상 속 캐릭터가 다시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The Imaginary Cowboy © Anja Niemi : The Little Black Gallery



The Duel © Anja Niemi : The Little Black Gallery



The Graveyard © Anja Niemi : The Little Black Gallery


 
GIRLS CAN DO ANYTHING
이 시리즈는 그녀의 전작들에 비해 가장 정치적인데, 전통적으로 ‘마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카우보이를 꿈꾸는 여성의 이야기는 최근 페미니스트들의 슬로건 중 하나인 ‘GIRLS CAN DO ANYTHING(여성은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할 수 없다고 여겨지거나, 금기인 분야에 도전하며, ‘여성 역시 (남성과 똑같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며 성적 고정관념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안냐 니에미의 사진들은 모두 따뜻한 색감과 매끈한 화면으로 아름답지만, 그의 작업이 주목받는 것은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내 작품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색감이 돋보인다는 말을 듣지만, 단지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며 “나는 항상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작업에 은유적으로 담으려 한다”고 말한다. 이 시리즈의 사진에 내내 인물의 얼굴이 정확하게 등장하지 않고, 오직 카우보이 남자 초상화만이 유일하게 등장하는 얼굴인 것은 상상 속의 여인이 스스로 원치 않는 삶을 살며,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코르셋을 벗는 장면 역시 화면의 위에는 엄숙한 성화(聖畵)가 걸려있어 그만큼 캐릭터가 억압받고 있음을 암시하는 등, 사진 곳곳에 눈여겨 볼만한 상징이 숨어있다.  

이 시리즈는 미국 유타주의 국립공원과 영화 세트장, 아파트 등에서 촬영했다. 붉은 색과 핑크 색의 암석들을 보며, 그녀는 이 곳이 자신이 상상하던 쓸쓸한 배경으로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 캐릭터는 내가 분했던 모든 캐릭터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며 “사진 속 카우보이는 나의 캐릭터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서부 영화나 카우보이들의 초상화를 보며 만든 상상이다, 나는 내 캐릭터가 만든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 놀기를 즐겼다”고 설명했다.



 



The Dress © Anja Niemi : The Little Black Gallery



Bang Bang © Anja Niemi : The Little Black Gallery

 
그렇지만 실제 촬영과정이 상상 속 놀이처럼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촬영부터 분장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그녀지만, 노르웨이인인 그녀가 말을 타고 미국 서부 국립공원을 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작업은 혼자 촬영했지만, 얼룩무늬 말에 올라타는 장면만은 다른 카우보이의 도움을 빌렸다고. 또 전형적인 미국 서부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로, 집 밖으로 나선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 받기를 좋아하지 않는, 다소 수줍은 그녀에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용기가 별로 없는 내가 카우보이 복장으로 완전무장을 한 채, 미국 국립공원에 혼자 서 있는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사람들, 말, 공개되고 붐비는 공간, 이런 모든 것이 나를 미칠 것 같이 몰아갔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건 너 자신을 위한 거야, 카우보이! 누구든 어디에서든 사람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모습으로 나설 수 있어.’라고 말해줬죠.”

이 시리즈는 영화 같은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 마지막은 비석들이 즐비한 무덤의 모습으로 끝난다. 비석 앞에는 죽음을 애도하는 꽃이 즐비하게 놓여서 시들어가고 있다. 마치 그렇게 열망하던 카우보이가 되지 못한 채, 상상만 하며 시들어 가는 자신의 캐릭터에 바치는 애도의 꽃다발처럼.   


 
“무덤을 마지막으로 한 것은 내 카우보이에게 너무 늦기 전에 서두르라고 일러주기 위해서예요. 클리세이긴 하지만, 우리는 오직 한 번만 살 뿐이잖아요. 자신이 정말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에도 짧은 시간이에요”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The Little Black Gallery(www.thelittleblackgallery.com)
해당 기사는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